사회의 민주화와 대학의 민주화, 1987~1997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억압과 강제 해직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대학자율화와 사회비판 운동을 통해 굳게 유지해온 우리 지식인 운동의 정신은 1987년 민주대장정 속에 꽃피게 된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공안정국과 4·13 호헌조치에 대해 전국의 교수들은 대학별로 시국선언을 발표했으며 모두 48개 대학에서 1천513명이 이에 참여하였다. 그러한 분노와 의기를 모아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몸으로 따라 합류하면서 원로 및 중진교수와 30, 40대의 소장교수들이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출범 이후 민교협은 전두환 정권의 기만적인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선언 이후 각 분야에서 터져 오른 민주화의 봇물을 변혁지향 민중운동이라는 큰 물줄기로 이끌어 가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후 시민사회 운동은 물론 노동, 빈민 등 민중 운동을 포함한 모든 사회 운동에 지식인 운동 단체로서 큰 영향을 미쳐왔고, 민주화와 변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갔다.
신자유주의와 민주화 운동, 1997~2007
그러나 1997년의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을 빌미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화가 진행되자, 민교협의 활동도 다소 위축되었다. 특히 우리 대학이 김영삼 정부가 1995년 발표한 <대학설립준칙주의>라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민주 민중 진영을 지원해 오던 회원 교수들의 처지가 열악해 진 것과 관련이 크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그 결과는 전 사회적인 신자유주의의 대대적인 확산이었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 시기에 민교협 회원들간의 이견도 다소 확대되었으며 이에 따라 민교협 활동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하에서도 신자유주의적 경제, 사회, 교육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다방면의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 왔으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 운동 단체로서의 역할을 이어 나갔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민교협, 2008~2017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보수 퇴행의 시기에 민중의 삶은 다시 피폐해졌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개방을 합의하였으며 이는 전국민적인 저항을 불러오게 된다. 민교협은 교수단체들과 함께 전국 교수 서명운동을 전개 총 1008명이 서명한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가 자행하는 언론장악, 집시법 개악 등 반민주적, 반민중적 행태에 저항하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 2009년 용산 참사 직후 진보 시민단체와 함께 범국민대책위원회를 구성,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도시재개발과 도시빈민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해결방안을 민중과의 연대를 통해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국토를 황폐화하는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설파하고 이를 저지하는 운동을 환경운동의 차원을 넘어 정치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 강행에 직면해 범국민운동본부에 적극 결합해 전문 지식인 단체로서 반대 논리를 형성하는 담론 투쟁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진보적 대안을 사회적 담론화하고 정책으로 생산해내는 지식인 단체로서 본연의 기능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는 시작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 등 부정 선거 의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에 민교협은 선거 직후부터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했으며 이후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불통을 비판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구조 실패, 진상규명 훼방 등은 ’이게 나라냐’는 한탄이 나올 정도로 무능과 불통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민교협은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각종 연대운동을 전개하면서 박근혜 정부 하에서 가속화되고 있던 민주주의의 퇴행을 저지하고자 노력했다. 아울러 신자유주의 체제의 공고화에 따른 의료 및 교육 등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확대, 쌍용차 사태로 대변되는 노동 탄압에 맞서 민중과 연대하고 투쟁을 지원해 왔다. 비리사학 문제와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그리고 이에 따른 학문 생태계의 붕괴를 막기위한 활동을 지속함과 동시에, 국정교과서 문제나 위안부 협상 등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적 실정에 대응해 그 부당성을 알리는 데 노력해 왔으며, 마침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한 시민들과 함께 전국의 교수연구자들을 조직해 촛불 혁명에 참여, 새로운 민주평등 공공성의 민주공화국의 개혁 의제들을 제시하게 되었다.
실천적 아카데미즘의 복원, 2018~
지난 30여년간 민교협은 사회와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 억압적 권력에 저항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성찰적 지성의 역할을 수행하여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변화와 공동체성의 상실 속에 민교협을 비롯한 비판적 교수/연구자 운동은 심각한 침체의 상태에 빠져있다. 그 결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 앞에 교수/연구자들은 근본적 성찰과 새로운 방향성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대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지성의 상아탑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전락하였다. 또한 엘리트주의, 학벌주의, 권위주의, 그리고 분과학문적 폐쇄성에 빠진 기존의 지식생산체계는 탈정치화되고 탈가치화된 기능주의적 지식만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민교협은 1970, 80년대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에 저항한 교수/연구자들이 이 땅의 민중들과 연대하면서 추구하였던 실천적 아카데미즘의 정신을 다시 회복하여, 교수/연구자들의 학문적 성취와 연구의 결과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대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지식인 운동을 새롭게 건설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주로 정규직 대학교수들로 구성되었던 조직을 보다 개방적으로 확대하여, 대학 안과 밖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보다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으로 거듭나려 한다. 특히, 비정규 교수 및 연구자들과 적극 연대하여 대학 민주주의와 학문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연구자의 집’의 조직에 적극 참여하여 교수/연구자의 지식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펼쳐 나갈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 시민사회와 두텁게 연대하며,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지식인적 실천을 펼쳐 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