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해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는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트럼프의 전쟁에 동참하지 말라!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명분으로 ‘군사적 기여’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최근 군사적 수단을 포함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파병설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 보도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신형 군수지원함인 소양함과 P-8A 해상초계기, 폭발물 처리반(EOD) 등이 파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정부 스스로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군사적 기여’를 검토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인 한국에 정식으로 파병을 요청하고 협의를 구하기보다 미국의 힘을 앞세워 군사적 참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정상적인 외교적 협의와 절차마저 무시한 이러한 강압에 한국이 끌려가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이 대한민국의 경제와 에너지 안보에 중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쟁 이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석유, 가스 등 탄화수소 자원의 약 5분의 1이 이 해협을 통과했다. 특히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의 불안정은 에너지 가격과 해상운임 상승 등 심각한 경제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한국군을 파병해야 한다는 주장은 별개의 문제이다. 오히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오늘날 호르무즈의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왜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결과를 한국군과 한국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가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대이란 군사행동에 나섰고 이란의 반격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위기, 세계 에너지 시장의 혼란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자신이 시작한 전쟁이 초래한 위험을 동맹국들에게 나누어 부담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미국이 벌이는 모든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동맹의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외부의 무력 침략으로 정치적 독립성과 안보가 위협을 받을 경우’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임을 명시하고 있는바, 미국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중동의 전쟁에 한국군을 보내는 것을 동맹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전쟁은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결의는 물론, 미국 자국민의 지지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국제법이나 규범, 그 어디에서도 참여의 명분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의 요구가 있다고 해서 중동의 전쟁에 한국군을 보내는 것을 당연한 동맹의 의무로 받아들여서는 안 됨은 명백하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군사적 참여 요구에 분명한 선을 긋기보다 ‘역내 안정 기여’, ‘국익’, ‘상선 보호’, ‘방어 목적’ 등을 내세우며 파병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태도다. 미국의 압박이 강하더라도 최종적인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다. 실제 파병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트럼프가 요구한 파병’인 동시에 ‘이재명 정부가 선택한 파병’이다.
‘비전투 자산’이라는 표현도 파병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군수지원함은 작전 중인 함대에 유류와 군수물자를 공급하여 군사작전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자산이다. P-8A 해상초계기 역시 해상 감시, 정찰과 잠수함 탐지 등을 수행하는 군용 항공기다. 현대전에서 군수지원, 정보, 정찰은 전쟁 수행의 핵심 요소다. 직접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자산을 ‘비전투’라고 규정하고 그 군사적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비전투 병력’부터 보내자는 접근 역시 경계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도 2003년 공병과 의료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서희부대와 제마부대를 먼저 파견한 뒤 이듬해 훨씬 큰 규모의 자이툰부대 파병으로 확대됐다. 당시와 현재의 상황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제한적, 비전투적 지원’으로 시작된 파병이 상황 변화와 미국의 추가 요구에 따라 확대될 가능성은 충분히 경계해야 한다.
더구나 일단 병력과 군사자산이 분쟁지역에 들어가면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뒤따른다. 병력 보호와 자위를 이유로 무장과 작전 범위가 확대되고 실제 전투에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군의 파병은 한국을 사실상의 분쟁 당사자로 만들고 한국군뿐 아니라 한국 선박과 기업, 현지 체류 국민까지 새로운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방위에 필요한 최신 군사자산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중동에 투입하는 것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정부는 설명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국익’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미국의 요구에 응하는 대가로 관세, 통상, 대미 투자, 방위비 등의 현안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으려 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군대의 해외파병은 다른 협상에서 양보를 얻기 위해 주고받을 수 있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며, 국민과 장병의 생명을 경제적, 외교적 반대급부와 교환해서도 안 된다. 진정한 국익은 불필요한 전쟁에 가담하지 않고 국민과 장병의 안전을 지키며 한반도의 방위 역량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에 우리는 이재명 정부에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을 파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혀라. “결정된 바 없다”는 모호한 입장을 반복하며 파병 가능성을 열어두어서는 안 된다.
둘째, ‘상선 보호’, ‘방어 목적’, ‘비전투 자산’ 등의 명목으로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을 지원하지 말라.
셋째, 파병 문제를 관세, 통상, 대미 투자, 방위비 분담 등 다른 한미 간 현안과 연계하지 말라. 국민과 장병의 안전은 어떠한 경제적 반대급부와도 거래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수입선 다변화와 전략비축 확대 등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2026년 9월 6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