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민교협 2.0 40기 집행부 출범에 부쳐
민교협 2.0 40기 집행부 출범에 부쳐
송수영 40기 민교협2.0 상임공동의장 (중앙대 명예교수)
민교협이 1987년 출범한 이래, 40년이 되었고, 사실상 이미 시작된 민교협 40기가 이제 공식적으로 시작합니다. 부족한 인원, 물리적으로 서로 먼 거리, 그리고 연구와 강의에 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이런 민교협의 명맥을 이어 온 전임 상임위원들과 물심양면 도움을 마다 하지 않은 민교협 회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40기가 맞이하는 한국 사회의 당면한 문제와 국제 사회의 다변적인 불확실성은 민교협의 양적 팽창 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 변모, 진화를 요구합니다. 오늘 40기 중앙위원회와 임시 대의원회가 그 시발점 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 경제 환경은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으로 칭송받고 선진국의 일원으로 인정 받을 정도로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일부 국제 경제 기구 (예: IMF) 에서는 아직 한국을 개발도상국의 일원으로 포함하여 취급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1997년 동아시아 금융 위기 속에서 초래된 위기를 양적팽창(소비극대화)을 통해서 극복하고 2008년 대침체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보다 덜 침체하여 이겨내었습니다. 세계은행은 1993년 발표문에서 세계화라는 기치아래에서 정부의 산업정책을 지양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서 낮은 세금과 낮은 관세등의 자유시장정책을 옹호하면서 동아시아 (1+4호랑이=일본+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의 경제 성공을 예외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2026년 세계 은행은 정부의 산업정책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정 문헌을 발표했습니다.
19세기 2차 산업혁명의 진행과정 속에서 마르크스가 공들여 지적하였던 자본 소유자 (Capital Asset Owner) 들의 전횡으로 초래되는 문제, 특히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경제적 가치는 노동에서만 나오는데 자본재 소유자들의 ‘지대추구’(rent seeking)로 인하여 부의 양극화, 경제적 파탄, 사회적 분열이 발생하고 그 결과 자본주의는 붕괴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유토피아가 도래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난 180년의 서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케인즈가 지적한 바 자본주의라도 문제점을 고쳐 가면서 사용해야 경제와 사회가 유지되고, 가장 하위계층의 복지도 증진되었음을 보였습니다. 더구나,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되어 전세계로 악영향을 끼친 ‘대침체’(Global Recession) 는 규제 완화 속에서 정부가 통제와 간섭을 줄이고 시장에 통제권을 양보하는 경제 체제가 큰 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을 최고 수준의 자유민주주의 와 자본주의의 총아인 미국에서 실증하였습니다.
Pikketty(2014)는 ‘21세기 자본주의’(Twenty First Century Capitalism)에서 1980년대 이후 자본의 사용 비용인 이자율(r)이 임금성장의 척도인 경제성장률 (g) 보다 크게 되어서 (r > g) 최상위계층의 부가 더욱 증가하여 21세기 들어서 19세기 말 ‘도금시대’ (Gilded age)에 최악으로 치달은 부의 불균형이 다시금 재현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후 많은 학자들의 후속 연구가 이루어 지면서 피켓티가 사용한 실증자료의 정당성을 개선하고, 부의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 제안에서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피켓티는 재산세의 증대와 조세회피를 막기 위한 국제공조, 그리고 법인세의 실질적인 집행으로 즉 세금을 활용한 부의 불균형 해결을 주창하고 대기업에 의해서 형성되는 과점적 국가지배구조를 막기 위한 민주주의적 통제와 규제 강화를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5년 프랑스는 피켓티와 주크만(Pikketty and Zucman)이 제안한 세법을 부결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 성장의 주요 요소가 자본재(capital)와 노동(labor) 인데, 강화된 규제와 부유세(혹은 재산세: wealth tax)가 자본의 형성을 저해하여 성장률을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유럽은 부의 불균형이 평행으로 횡보한 반면 미국에서 부의 불균형이 심화된 것이 과잉대표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재산세가 아니라 효과적인 산업정책으로 경제성장을 성취하면서 상위계층 특히 자본재의 소유자들 자본가들이 ‘지대추구’를 막는 규제와 법을 적용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경제 성장을 성취하는 효과적인 산업정책을 추구하되, 자본가들이 지대를 획득할 여지를 막고, 민주주의의 작동을 효과적으로 하여 정부가 자본가들에게 포획(capture)되지 않게 방지해야합니다.이런 관점에서 AI의 도입은 특히 자본재의 생산비용을 극도로 낮출 수 있다면, 즉 AI 생태계 완성을 위한 투자는 바람직 할 수 있습니다. 다만 AI 기술자와 광적인 중독자들이 자본가와 결탁하여 지대 착취를 하게 허용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Acemoglu(2026)의 주장처럼 AI는 노동친화적 AI (pro-labor AI)를 개발해 활용해야만 하지, 궁극의 최첨단 AI 특히 자율적인 판단과 실행을 하는 ‘일반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개발은 조심스러이 혹은 개발하지 않는게 오히려 낫습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반대는 AI 광신도,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익명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AI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성을 특히 재정적 충격 감당 능력과 정치적 지지를 획득하는 중산층과 노동 생산성 상승을 통한 소득의 안정적 유지를 목표로 정부의 역량을 집중하고, 훼방요소를 과감히 제거해 나가야합니다. 그게 바로 혁신이고 개혁이고 성장을 촉진하는 규제입니다.
40기 민교협은 이런 주제를 가지고 적극적인 토론 참여와 투표권자의 51% 이상의 사고방식을 개선하는 틀을 만들어 간다는 심정으로 사상투쟁을 강화해나가야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저소득층과 하위 계급의 지지를 받은 상위 지대추구 계급의 연합으로 민주적 정권이 무너지고 전체주의적 체제로 쉽사리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파시즘과 나치즘에서 그 교훈을 얻기도 해야 하지만, 2026년 현재 시점에서 올림픽 공원의 극우들의 준동을 경계해야합니다. 특히 일부 지배적 상위 계급과 이들이 결합하면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히틀러가 뮌헨에서 저지른 폭동 (Putsch)은 처음에는 실패했지만, 보수집단의 암묵적 협력으로 집권을 하게되고 내부투쟁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승리하면서 독일은 전체주의 국가로 전환되었습니다. 한국의 극우들도 여전히 자신들이 신봉하는 기억이 미망이라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상위계급이 제공하는 떡고물을 기대하는 마음을 겸양지덕 혹은 겸손과 자기 분수를 아는 존재로 자부하면서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마음속으로 ‘빨갱이 박멸’을 외치고 있습니다. 조금 배움의 끈이 길어 보여도 여전히 오해와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외치는 반동세력 (예: 윤석렬 정권 구성원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51대 49의 싸움은 항상 그렇게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