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대한민국은 대학강사에게 사죄하라
대학강사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 지급 판결을 촉구한다
대학강사의 등골을 빼먹으며 성장한 대한민국의 대학들, 강사의 노동자성을 부정하거나 퇴직금마저 지급하지 않으려는 그 탐욕이 과연 대학의 정신인가?
한국에서 대학강사가 없었다면 대학은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전임교원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다가 저질의 고등교육과 열악한 연구환경으로 인해 몰락했거나 고등교육이 불가능한 수준 이하의 무늬만 대학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보통교육이 될 정도로 고등교육부문이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대졸자 수가 2천만 명을 넘는 동안 대학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및 각종 차별에 시달리는 강사들의 피땀으로 수십 년 간 자신의 지위를 누리고 자산을 축적했다. 아직 뜨거운 맛을 덜 봐서 그럴까. 대학들은 여전히 염치가 없고 후안무치하다. 노동자인 대학강사의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으려 수십 개 대학이 소송을 벌이다 2007년에 대법원에서 패소하였다. 이후 대학강사 퇴직금 소송에서도 여러 차례 패소한 대학들은 이제는 아예 거대 로펌들을 끌어들여 일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권력에 부역하며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 비정규직 차별, 사용자성 부정, 대량해고, 극단적 양극화에 찌든 자본의 신전을 어찌 대학이라 계속 부를 수 있겠는가? 염치가 없는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인간성을 죽이는 방식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재단들은 더 이상 대학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학의 본질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육부와 국회의 무능과 무책임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교육부는 1시간 5시간 이상 강의한 강사만 퇴직금을 주라는 엉터리 지침을 철회하고 즉각 모든 대학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토록 강제하면서 예산을 확보하라. 국회는 교원에게 제대로 된 임금·노동조건을 보장하는 특별법을 즉각 입법하고 교원이 아닌 사람은 강의를 할 수 없도록 조치하라. 전임교원과 차별이 없도록 대학강사의 급여, 연금, 퇴직금, 연구비, 수당 지급을 명시하라.
2018년 통과되어 2019년 8월1일부터 시행된 신 강사법(고등교육법일부개정법률안) 법령에 명시되었듯이 강사가 교원으로서 ‘교육․지도 및 학문연구’라는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면 무엇보다 생활이 안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강의료는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고, 방학 중 임금은 교육부-국회-대학의 커넥션으로 인해 전체 22주의 방학 기간 중 겨우 4주만 지급하고 있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와 국회가 예산을 제대로 배정하지 않고 엉터리 기준을 만들었고 저임금을 방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1주당 5시간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에게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지침을 내린 교육부는 강의노동의 특성을 모르고 있다. 교육부의 이 지침은 강의시간의 3배(1시간의 강의+2시간의 강의준비와 평가노동)를 강의노동시간으로 산정하는 판례를 확대해석한 것일 뿐 실제 강의노동시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이론과 실기 등 교과목의 여러 특성, 신규 개설-신규 강의 여부, 강의노트 또는 동영상 제작·제공 여부, 토론식 수업 여부, 과제물 부여와 피드백 정도, 수강생 규모와 외국인·장애인 학생 포함 여부, 시험문제의 종류와 평가 방식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 강의노동시간을 지나치게 짧게 잡은 것이다. 제대로 된 수업을 하기 위해 강의 개시 전부터 성적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 강의시간 외 강의노동시간을 고작 2배로 계산한 것은 지나치게 적게 잡은 것이다. 정보라 박사가 자신의 수업 자료를 바탕으로 실제 계산한 것처럼 최소 4배에서 최대 10배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1주당 5시간 이상 강의자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지침을 즉각 폐기하고 모든 대학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
국회는 퇴직금뿐만 아니라 연구비를 포함한 주휴·연차 수당 등의 각종 수당에서도 강사들이 전임교원에 비해 차별받지 않도록 입법해야 할 것이다. 또한 10년 전부터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강조했던 풍선효과(강사 대신 무늬만 다른 비전임교원을 채용함으로써 강사 문제 해결이 제대로 안 되는 현상)를 확실히 제거하기 위하여 신 강사법의 시행령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실태조사와 처벌 조항을 신설하여 대학이 더 이상 불법, 편법, 탈법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할 것이다. 감사와 처벌이 없으니 대학들은 법을 조롱하며 예전처럼 강사 대량해고, 처우개선 미흡, 겸임·초빙교수 등 비전임교원 과다 활용, 전체 비전임교원의 임금 및 노동조건 정체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국회와 교육부가 미온적이니 여러 대학은 ‘소송’을 불사하며 퇴직금마저 받기 힘들게 하고 있다. 하다하다 이제 국내 최대 규모의 로펌들을 끌어들여 강사를 초단시간근로자로 몰아가거나 각종 수당 지급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 대학 강사는 시간강사 시절부터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연차휴가와 주휴일, 연차휴가수당과 주휴수당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고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상 노동절에 대하여도 법에 정해진 유급휴일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021년 12월1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시간강사의 주휴수당과 연차수당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 이제 퇴직금과 주휴․연차수당을 둘러싼 소송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고 우리는 그 투쟁에 전면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교육부와 국회는 사법부의 역량 낭비를 막고 학생 등록금 부담을 줄이고 강사 개인의 소송 비용 부담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전 강사에게 퇴직금 지급과 주휴․연차수당 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여 지원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학은 퇴직금이나 수당 소송 관련 없이 일괄적으로 대학강사 대량해고를 또다시 자행하는 자해공갈을 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강사, 전임교원, 대학원생, 학생들, 전 사회구성원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학들이 아무리 저열한 조치를 취해 본 들 교육부와 행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수년에 걸친 대규모 소송을 피해 가긴 힘들 것이다. 퇴직금과 수당들은 지난 수십년 간 이미 발생했기 때문이다. 혹여 해고가 발생하면 소송은 더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송곳은 곳곳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우린 더욱 더 대규모로 집단소송을 준비할 것이다.
정보라 박사는 소설가이자 학자이자 교육자이자 실천가이자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의 조합원이다. 우리는 편견 없이 10년 이상 대학강사였던 정보라 박사의 퇴직금과 수당에 대한 권리가 보장받길 바란다. 강의시간 외의 강의 준비와 평가 노동시간에 대해서도 사실에 입각한 납득할만한 기준을 제시해주길 바란다. 사법부의 현명하고 조속한 판결을 기대한다.
정보라 작가는 지난 10년 간 연구실적도 많고 신규 강좌 개발 등 학과 업무를 수행했고 강사이기 때문에 교수로부터 요구받은 학회 활동까지 하면서도 강의노동을 충실히 수행했다. 재직 기간 중 무려 6번이나 총장으로부터 우수상을 받았으며, 실제 강의노동시간을 계산해 본 결과 1강좌의 강의를 수행하기 위해 최소 한 학기에 20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을 투여해 왔다. 전임교원처럼 1주당 9시간을 강의한다고 가정했을 때 정보라 강사의 1년 강의노동시간은 약 1,200시간으로 추산된다(1강좌 200시간×3강좌×2개 학기). 1주당 평균 강의노동시간은 40시간이다(1강좌 200시간÷한 학기 15주). 이는 우리의 경험상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재판부가 이 결과를 검증하여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납득할만한 강의시간 외 강의관련노동시간 인정 기준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년트랙 전임교원은 한 학기에 1주당 9시간을 강의하면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정년트랙 전임교원의 의무책임시수가 1주당 6시간인 대학도 많다. 의무책임시수를 넘긴 전임교원에게 초과강의수당을 지급한 대학도 많다. 정년트랙 전임교원은 학기 중과 거의 같은 급여를 방학 기간에도 받고 몇 년에 한 번씩 안식년도 가진다. 사학연금 적용을 받고 각종 연구비도 논문을 내면 수시로 받는다. 전임교원의 의무책임시수가 6시간~9시간인 이유는 그만큼 강의시간 외 강의노동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는 방증인 것이다.
정보라 박사처럼 강의노동을 수행하는 대학강사들을 주15시간 미만 노동하는 초단시간근로자로 간주하여 각종 수당 지급을 하지 않으려는 시도 자체가 반노동적이고 차별적이다. 한 대학에의 전속성이나 다른 수입이나 재산 정도로 임금을 지급하는 곳은 없다. 강의는 특수한 노동이다. 판사들의 임금을 재판시간에만 한정해서 산정하고 재산 정도로 차등지급한다고 생각해보라. 대학 전임교원에게부터 적용한다고 상상해보라. 이를 사회적으로 확장해보라. 노동자 대부분은 초단시간노동자로 전락할 것이고 임금의 개념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올바른 방향인가. 우리는 재판부가 진실과 정의의 눈으로 이 사건을 대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보라 박사의 퇴직금과 각종 수당 지급 결정을 조속히 해 줄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정보라 작가의 소송 이후에도 다른 강사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집단소송을 이어나갈 것이다. 빼앗긴 건 되찾을 수 있어도 내어준 건 되찾기 어렵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내어주기만 하며 노예처럼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학강사에게 사죄하라!
2022년 8월 31일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