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 교권 회복 및 교육 현장 정상화를 촉구하는 민교협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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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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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회복 및 교육 현장 정상화를 촉구하는 민교협 성명서
- 가정과 학교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아동학대처벌법 개정하라.
- 교육 당국은 교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예산과 인력 확보 방안을 제시하라
- 교사, 학생 그리고 학부모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보수언론의 갈라치기 행태를 규탄한다
우선 시급한 것은 아동학대처벌법의 개정이다. 현재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 경찰과 같은 수사기관은 출동-조사-격리 등의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의 아동학대 행위를 판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고의성, 지속성, 심각성, 더 나아가 그 행위의 교육적 맥락이다. 하지만 현재의 아동학대처벌법은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아동학대를 중심으로 해서 법이 만들어졌기에 철저히 피해 아동(18세 미만)의 진술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열린 공간이고 다양한 목격자들이 있으며, 자체 시스템을 통해서 해결할 수단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는 정당한 사유도 없이 이 법을 남용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아동학대로 신고된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교사는 누적 8,413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 중 실제로 기소된 비율은 1.5% 수준이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가 도를 넘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 지도를 할 수 없다는 교사들의 무력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학교 현장의 상황이 어떤가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와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둘째로 교사들의 우울 상태에 대한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지난달 전교조, 녹색병원 실태조사에서는 교사 63%가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심각한 우울 증상을 토로한 교사 비율은 38.3%로 일반 성인의 심한 우울 증상 유병률 8~10%의 약 4배에 해당한다.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이도 16%나 됐다(일반인은 3~7%). 심각한 우울 증상은 최소 1년의 기간 동안 학생을 담당해야 하는 업무 특성과 교사에게 요구하는 과도한 도덕성에서 비롯한다. 교사들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업무로 학부모 상담·민원 대응 업무(37.5%)를 꼽았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학부모 상담 횟수가 늘어날수록 스트레스와 우울 증상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악성 민원에 대한 교사 보호 그리고 교사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과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셋째로 논의의 초점을 교사들과 학생들의 안전에 맞추어야 한다. 9년 차 한 초등교사는 “경제적 이득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살려달라는 거다.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 ‘다음’은 언제라도 내가 될 수 있다고 느낀다. 더는 우리가 일하는 공간이 비인간적으로 굴러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교육 당국은 교사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지 않다. 교육 활동 중 발생한 문제를 지원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공적 제도의 부재는 교사들을 ‘교권 침해 특약’이 포함된 사보험 가입으로 이끈다. 2019년 약 4,200명이었던 보험 가입자 수는 5년이 지난 올해 7월까지 8,000여 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관했던 교육부, 교육청, 학교 관리자들은 분명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학생인권과 교권,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를 대립시키거나, 학생들의 자살율을 언급하며 교사만 힘든 것이 아니라 학생들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다. 교사들이 학생인권을 반대한 적이 없으며,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학생들의 자살이 직접적으로 교사들 때문인 것도 아니다. 이러한 발언은 지금의 상황을 더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지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학생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것이 교육인가? 혼이 날 때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잘못했을 때 부끄러움도 느끼고 책임감도 배우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이 지금의 학교에서는 쉽지 않다. 자기 아이의 잘못에 대한 교사의 정당한 지적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아이의 그릇된 행동에 가해지는 훈육과 처벌이 아이의 기를 죽일 수 있다며 우려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작은 지적과 부정적인 피드백에도 쉽게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깨지면서 배운다”는 서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나를 혼내고, 불편하게 하는 모든 것은 나의 적이다. 학교 내의 인간관계는 언제라도 법정에서 만날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이루어지는 듯하다. 거기에 배움, 인식의 성장과 같은 것은 없다. 학교는 승자와 패자의 논리만이 횡행한다. 교사들이 교실을 버리고 거리로 뛰쳐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사들은 집회에서 “가르치고 싶습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이 말이 진정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대한민국 사회는 심각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2023년 9월 18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