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학생인권조례 탓하지 말고 실질적인 교사 보호 방안 마련하라
학생인권조례 탓하지 말고 실질적인 교사 보호 방안 마련하라
지난 7월 18일에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7월 22일에 전현직 교사와 교대생 등 5천 명이 모여 ‘추도식 및 교사 생존권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비통에 잠긴 교사들은 이후 7월 29일에 약 3만 명이 다시 모였고, 8월 5일에도 다시 같은 규모의 집회를 열어 공교육 정상화를 요구했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방송사에서도 그 사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고, 서울시교육청과 교직3단체가 교권 보호를 위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과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분명 대한민국 교육은 어떤 해법이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 사태의 직접적 원인은 어느 학부모가 피해 교사를 집요하게 괴롭혔다는 것이지만 그 속에는 교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왜곡된 인식이 숨어 있다. 자신의 아이가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저절로 교육전문가가 된다는 착각 말이다. “교사 자격 없어요!”, “애 안 키워봤죠?”라고 교사에게 말하는 일부 학부모나 학생들의 태도는 이를 잘 보여준다. 교내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타지 못한 경우 교사의 평가기준 및 평가자질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행위가 나타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세상에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많아서 어떻게 보면 어느 몰지각한 학부모가 젊은 교사를 괴롭힌 단순한 사건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교사들이 분노하며 대규모 집회에 나선 것은 이미 많은 교사들이 동일한 문제로 큰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내가 저런 일을 당할 수 있구나”라는 위협감으로 힘들어하는 선생님들이 있는 한 제대로 된 교육은 요원해보인다.
과거에도 교사들은 종종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그때는 참교육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구 사항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을 치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2020년대인 오늘날 거리로 나온 교사들의 구호는 “살게 해달라”고 말한다. 학생을 가르치면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다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었는가? 집회에서 선생님들은 또한 “가르치고 싶습니다”라고 외친다. 교사의 가르침과 지시가 통하지 않는 교실은, 교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도 보호하지 못하게 되며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무력감이 교사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교사에 대한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과 위협은 이제 도를 넘어섰다. 한국교총의 1월 설문조사(5520명)를 보면 현재 교직에 만족한다는 교사들의 비율은 23.6%에 불과하다. 2016년에 70.2%였던 교사에 만족한다는 비율이 불과 6년 만에 급전직하한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본다면 학부모가 교사에게 언제든 직접 전화하는 것을 허용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교사와 학부모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물건이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의 거의 스토킹에 가까운 괴롭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늦었지만 이참에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직접 불만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민원창구를 학교장으로 일원화하는 제도개선책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 폭력의 경우에는 교사가 직접 담당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도 절실해 보인다. 민원에 시달리는 교사는 고발되면 학부모 상대, 경찰 조사에 더해 교육청 보고서류까지 감당해야 하고 학교는 감사 대상이 된다. 처벌까지 가지 않아도 고통스럽다. 도를 넘는 학부모의 민원 제기에 대해서는 미국처럼 허래스먼트(harassment, 괴롭힘)로 규정한 후 배닝(banning, 학교 접근 금지)과 같은 단호한 대처를 이제 대한민국도 고려할 시점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집회에 나온 교사들은 이러한 소폭의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가장 심각한 문제는 2014년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사들을 무차별적 신고 위협에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법은 18세 미만인 청소년에 대한 학대를 막자는 취지를 가진 법으로서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출동-조사-격리 등의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이렇게 신속한 조치를 강조한 것은 ‘가정’에서의 아동학대가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는 은밀하게 아동학대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자체 시스템을 통해서 해결할 수단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이 법이 적용됨에 따라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가 교사를 괴롭히기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남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4년간 등록된 교직원 아동학대 행위자 가운데 기소한 비율은 1.6%에 그쳤다. 학부모의 신고 중 무고성 신고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 전교조가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2.9%가 “자신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가 아동학대 신고를 하면 그 신고만으로 교사들은 아동과 분리를 명분으로 한 담임교체, 병가와 휴직, 수사기관 피신고, 전수조사 등을 받아야 한다. ‘무고한’ 교사가 당해야 할 피해가 너무나 큰 것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을 말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니 “아무 것도 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은 그래서 필요하다. 또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아동학대로 신고할 경우 그 신고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는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상황이 엄중한데도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은 고인의 죽음을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하려는 듯하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금의 사태는 학생인권이 우선되면서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이 붕괴된 것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서울시의회 의장 역시 학생인권조례를 재검토해 무너진 교권을 회복시키겠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진보교육감들의 대표적 정책이므로 이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대구, 대전, 경북, 강원, 전남, 충북, 세종, 부산, 울산, 경남 등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도 학부모 민원과 문제 학생들의 행동으로 교사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문제를 학생인권과 교권의 대립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생인권과 교사의 인권은 동시에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사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가 문제의 원인이라거나, 체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교사는 없다.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에 의해 교권이 유린당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적절한 교권 보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학부모의 과도한 간섭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학교의 자치권을 강화하고 교장과 교감에게 교권 보호 책임을 강력하게 부과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방학임에도, 폭염임에도 거리에 나선 교사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 구도로 몰고 가려는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의 정치적 선동을 규탄한다
- 신고절차, 중재위원회 등 구체적 지침에 대한 고려없이 학교 현장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하라
- 학부모의 민원이 곧바로 형사사건화 되지 않도록 하라
2023년 8월 10일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2.0)